https://brunch.co.kr/@ahes
twitter@catnflower
instagram@aheslove


고양이처럼 걷자, 꽃처럼 웃자
by 소년 아
퇴사 결심 10, 성격이 나빠
원래 성격도 나빴는데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똑같이 회사에서 일을 해도 너그럽고 여유로운 사람도 있다. 부럽다.

나는 자꾸 다른 일을 하고 싶어해서 그럴까? 하고 싶은 뭔가가 있어서 그럴까? 그렇다면 내가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란 얘기다.

왜 이렇게 미적거리느냐 하면,

내가 나 살자고 퇴사하면 내 아이들의 생활은 어떻게 될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서 그걸 하며 즐겁고 만족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기술이어도 좋고 학문이어도 좋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려면 돈에 대한 부담이 없어야 한다.

나는 대학 입학금은 부모님께서 어찌어찌 마련해 주셨지만 나머지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 다녔다. 공부를 잘 하지도 못했고 공부만 열심히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장학금도 받지 못했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한 건 아니었지만 학원 선생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여행을 다녀왔고, 용돈은 과외 교습을 해서 벌어 썼다. 고시 준비할 때 학원비는 다행히 부모님께서 내주셨지만(학자금 대출 같은게 안 되니까. 용돈으로 감당할 금액도 아니었다) 생활비는 내가 벌어서 썼다. 불합격 후 지금 직장에 취직해서 결혼할 때까지 나는 학자금을 갚았다. 결혼한 다음에는 전세 대출금을 갚았고 아이를 낳은 다음에는 갚았던 대출금을 다시 빼쓰며 살았다. 복직하고 나서는 부모님께 양육비를 드렸고, 다시 아이를 낳고 조금이나마 갚았던 대출금을 또 빼쓰며 살았다.

결혼 전에도 퇴사하고 싶은 순간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 버텼다. 그 때 호주로 갈 생각도 했고, 오라는 친구도 있었지만 대출금을 어떻게 갚나 생각을 하면 직장을 그만 둘 수 없었다.

내 아이들이 학자금 대출을 등에 지고 사회생활에 얽매이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 회사가 15년 후에도 같은 복지제도를 운영할 지 안 할 지 알게 뭐야? 15년 후에 이 회사가 남아 있을지 알게 뭐야? 내가 15년 후에 이 회사에 붙어 있을지 알게 뭐야? 내가 15년 후에 살아 있기나 할지 알게 뭐야?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길 바라면 나도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맞지 않을까?

그러나 또 반면에, 미칠듯한 가난을 겪은 내 어머니와 내 시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나는 지금 엄청나게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을 해도 배가 고팠던 시절, 일을 해도 굶었던 시절, 아니,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80년대 후반 까지도 김치와 김만 있는 차가운 도시락을 점심으로 먹고 깜깜할 때 돌아와서 찬 밥을 물에 말아 김치랑 먹고 잠들던 세대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내가 지금 사치에 겨웠구나 싶다.

내가 초등학생, 중학생 때 같이 집에서 살던 막내 이모는 새벽 5시 반에 출근해서 23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왔다. 이모는 학교 교사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미국에 유학을 다녀와서 학원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이모는 어떤 생각으로 일 했을까. 이모는 하고 싶은 일을 한 걸까.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이고 싶은걸까. 너희를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불확실성보다 안정된 하기싫은 일을 꾸역꾸역 성실하게 해냈단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지 않다. 그런데 아이들은 나를 자랑스러워할까?


반년 전 내게 쓴 메모가 엊그제 도착했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메모에는 '난, 너를 사랑해. 너가 충분히 느끼도록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고 적혀 있었다.
by 소년 아 | 2017/05/23 18:29 | LIFE | 트랙백 | 덧글(2)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포토로그
카테고리
최근 등록된 덧글
너무 마음아파요...
by 아롱이 at 05/25
1. 저야말로 연애..
by minci at 05/24
그 2번을 준 사람들..
by 소년 아 at 05/23
사실 근로자가 5백..
by 소년 아 at 05/23
최근 등록된 트랙백
삶의 무의미함에 ..
by The Brothers Ka..
[76days] 엄마..
by Walk like a cat,..
아랫집 엄마와 아기
by Walk like a cat,..
범인아.....아니..
by 아이유를 위하여!!
태그
rss

skin by 이글루스